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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7234
1970.01.01 (09: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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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종교가 뭐에요"라고 물으면 나는 약간 주저한 후에 "기독교인데요." 라고 대답한다. "나일론이에요."라는 웃음 섞인 소리와 함께. 사실 떳떳하게 "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진다.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는 현 한국의 기독교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믿음'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는 상당히 '현상타파'적인 요소가 강한 종교라 믿고 있다. 모세의 '엑소더스'가 의미하는 대탈출은 '궁핍'과, '폭정', 차별' 으로부터의 대탈출을 의미했다. 단지 '여호와'를 좇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도 당시의 주류세력에 반기를 든 혁명적 삶이었으며, 여러 가지의 '천벌'을 통한 '유혈혁명'을 주도했다.

또한 중세의 암흑과도 같은 가톨릭의 보수성을 깨고 일어난 종교혁명 또한 충분히 '현상타파'적인 성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이는 불교의 다분히 현실 안정적이고 보수적 색채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한국의 민주화로의 '이행기' 에서 기독교계의 공헌이 분명 '불교'의 그것보다 컸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종교의 특성 때문인지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다. 이는 아마도 기독교의 발전과정에서 행해진 수많은 '유혈폭력'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기독교의 '진보적' 색채를 좋아하고 잘은 모르지만 지독히도 프롤레타리아적 삶을 살아간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매력을 느낀다(아버지도 모르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의 삶은 자체가 비극이다!).

그러나 몇몇 기독교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내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강요당한다. 그들 중 일부는 나의 생각을 '사탄'의 생각이라 매도하고 기독교에 나타난 진보성을 거부한 채 현실안정의 보수성을 강요한다. 다른 일부는 나 같은 생각은 '믿음'이 '충만'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란 이래서 힘들다. 기독교인들 스스로 말하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선 외부로부터의 '광신도'의 누명을 써야한다. 또한, 나 같은 '나일론' 신자는 내부로부터의 "믿음이 충만하지 못한 자" 의 비난을 받아야한다. 기독교인에는 '중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기독교인'과 '나일론'만이 존재한다. 아니면 외부로부터의 '예수쟁이'의 비난뿐이다 (이는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중간적 단계가 존재하고 그 단계를 거치는 과정의 사람들도 다 같은 불자로 인정하는 불교와는 사뭇 다르다. 불교의 신자구분이 훨씬 세련 된 건 사실이다).

기독교인으로 살기 힘든 이유가 또 있다. 나는 구원을 받으려 기독교를 믿었건만, 현재의 기독교 행태는 내가 종교, 혹은 교회를 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예수가 인간의 구원(정확히 말하면 멸시받고 천대받는 하층민들의 구원)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는데, 이제 나보고 예수를 구하라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예수가 원한 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의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거지, 자기를 구원하라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 전엔 대기업 뺨치는 규모의 큰 교회에서 자식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다 실패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이른바 잘나간다는 교회에서 담임 목사직을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다가 사회 안팎에서 비난을 받은 사실은 정말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려 할 때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믿음이 충만하지 못한 자" , "사탄의 자식"이라 비난했을 것이다. 누가 사탄의 자식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희망을 갖는 것은 이러한 '사탄의 자식들' 사이에서 묵묵히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집안일에 녹초가 돼서 초저녁부터 쓰러져서 주무시는 어머님의 얼굴에서, 현대사의 굴곡을 몸소 걸쳐 살아오시면서 평생 '사치'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오다(할머니는 평생 화장실 뒤처리를 달력으로 해오셨다), 이제는 자신의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님의 얼굴에서, 새벽 칼바람에도 '사탄의 자식들'이 싸질러 논 쓰레기를 치우시는 환경미화원의 얼굴에서, 남들 출근할 때 밤새장사하고 리어카를 끌고 돌아가는 상인들의 얼굴에서, 예비군 훈련장에서 온갖 조롱을 받아가며 땀 뻘뻘 흘리며 설명하는 이등병의 얼굴에서, 한 평생 '남 좋은 일'만 하다 가신 문익환 목사님의 얼굴에서 예수를 본다.

그들이 진정한 기독교인이고 예수 그 자체이다. (한겨레신문)



국제기독신문 기자 2005-11-06 (67 호)
cm21yohan@hanmail.net
http://yesu.net/9319 (*.186.1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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