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거래소는 지난 5일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 1년간이나 배임혐의를 공시하지 않은 한화그룹, 이를 방치했다가 속전속결로 '면죄부'를 준 거래소에 대해 투자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국내 10대그룹 중 하나인 한화그룹이 상장 폐지 심사 대상에 오를 뻔 했다가 이틀만에 해제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대주주의 배임 혐의를 1년이나 늑장 공시한 대기업과 이를 방치한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에 투자자들은 쓴 웃음만 짓고 있다. 각각 실무진의 착오였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한화그룹과 거래소는 투자자들을 우롱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한화, 검찰 구형 후에야 공시 = '한화 소동'은 지난 3일 주식시장이 끝난 저녁 6시 46분 (주)한화가 공시를 하면서 시작됐다. 전날 검찰이 김승연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에 대해 구형을 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한화가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결정하기 전까지 주식매매를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동시에 횡령 배임 혐의로 검찰에 기소당한 지 1년이 됐는데도 공시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주)한화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했다. 유가증권시장 규정에 따르면 한화와 같은 대규모 법인의 경우 자기자본의 2.5% 이상 횡령 혐의가 발생하면 혐의발생 시점부터 공시를 하게 돼 있다.
한화는 투자자들에게 당연히 알려야 할 중요정보를 1년간이나 공시하지 않은 셈이 됐다. 또 거래소는 1년 동안 불성실공시 사실을 깜깜하게 몰랐던 눈뜬 장님이라는 사실을 자인하게 됐다.
◆거래소, 대기업 건만 신속처리하나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부랴부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던 거래소는 이틀 만인 5일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면죄부'를 줬다. 6일부터 주식거래를 중단시키기로 했던 것도 번복했다. 상장폐지 심사 대상 결정에는 통상 2주가 걸렸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대기업 건은 빠르게 처리해주고 중소기업 건은 '정상적'으로 처리하느냐는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거래소는 지난해 4월 상장 규정을 강화해 '횡령·배임 사실에 대한 공시가 있거나 검찰 기소 등을 통해 확인된 경우' 사유 발생일 다음날까지 거래소에 신고하도록 하고,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고 개정한 바 있다. 그 전까지 횡령·배임 사실이 최종 확정됐을 때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던 것에서 규정을 대폭강화한 것이다. 이는 주식시장에서 횡령·배임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확정판결 전까지 거래를 정지시키거나 상장폐지할 수 없어 투자자들의 피해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규정을 강화해 놓고도 대기업 건에 대해서는 느슨하게 적용한 셈이 됐다.
◆투자자, 쓴웃음만 난다 = 투자자들은 인터넷 주주게시판에 글을 쏟아내며 대기업과 거래소의 이상한 행태에 분노했다.
한 투자자는 "큰 집(대기업)은 봐주고, 구멍가게(중소기업)은 무시하는 거냐"며 거래소의 속전속결 면죄부를 비판했다. 또다른 투자자는 "한화 사건을 보고 대한민국은 1%특권층만 살아 남는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시장 신뢰도 추락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금도 엔론 사태를 이야기할 정도로 대주주 리스크에 민감하다"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깎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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